우리는 기술을 진보의 동의어로 여기는 경향이 있습니다. 오늘은 기술 발전이 '퇴보' 를 만든 사례들을 소개해 드릴 예정입니다.
더 빠르게, 더 편리하게, 더 정밀하게. 그러나 기술이 언제나 우리를 ‘더 나은 곳’으로 이끌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기술의 발전이 인간성과 환경, 사회 구조를 해치며 ‘퇴보’를 유발한 사례들도 존재합니다. 이 글에서는 기술이 낳은 의도치 않은 퇴보의 얼굴들을 살펴보며, "미래는 항상 진보다"라는 통념에 물음표를 던져보고자 합니다.
자동화가 만든 ‘기술적 실업’ – 일자리의 상실과 기술의 역설
기술 발전의 대표적 아이콘 중 하나는 자동화입니다. 공장에서는 로봇이 노동자를 대체하고, 사무실에서는 AI가 보고서 작성과 데이터 분석을 수행합니다. 효율성은 극대화되었지만, 그 이면에는 일자리의 소멸이라는 거대한 그늘이 드리워졌습니다.
대표적인 사례가 1980~90년대 미국 제조업 붕괴입니다. 자동화 기계가 도입되면서 숙련 노동자의 수요가 급감했고, 중산층의 기반이 붕괴되기 시작했습니다. 이는 지역 공동체의 해체, 정치적 양극화, 사회 불안으로까지 이어졌습니다.
최근에는 챗봇과 생성형 AI가 콘텐츠 제작, 고객 상담, 번역 등의 분야에서도 인간의 역할을 축소시키고 있습니다. 물론 새로운 직업이 등장하긴 하지만, 그 속도와 질은 기존 일자리를 대체하는 속도를 따라가지 못합니다.
아이러니하게도, 기술은 인간을 더 유능하게 만든다기보다, 더 필요 없게 만들 수도 있습니다. 이로 인해 기술이 진보할수록 개인은 소외되고, 불안정한 사회 구조가 강화되는 퇴보적 결과가 나타납니다.
디지털 편의가 만든 ‘인지 능력의 퇴화’ – 외부화된 뇌
오늘날 우리는 대부분의 정보를 스마트폰이나 인터넷에 의존합니다. 전화번호를 외우지 않아도 되고, 지도를 보며 길을 찾을 필요도 없으며, 모르는 것은 곧바로 검색하면 됩니다. 하지만 이러한 디지털 편의성은 우리의 기억력과 사고력의 저하를 야기하고 있습니다.
심리학자 니콜라스 카(Nicholas Carr)는 그의 저서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에서 "인터넷은 뇌를 얕은 사고에 익숙하게 만든다"고 주장했습니다. 정보의 깊은 이해보다는 단편적 소비에 익숙해지고, 집중력은 줄어들며, 비판적 사고는 퇴보한다는 것입니다.
연구들도 이를 뒷받침합니다.
한 실험에서는 구글을 사용할 수 있는 사람은 정보를 기억하려는 시도를 덜 하며, 대신 정보를 저장한 위치(검색 키워드나 웹사이트)를 더 잘 기억한다고 밝혀졌습니다.
GPS 의존도가 높은 사람들은 공간 지각 능력이 현저히 떨어지는 경향이 있으며, 실제 길을 찾는 데 필요한 두뇌 영역이 덜 활성화된다고 보고되었습니다.
즉, 우리는 뇌의 일부 기능을 '외주화'한 대신, 인지 능력이라는 인간 고유의 자산을 잃고 있는 중입니다. 기술의 발전이 인지적 퇴보를 부르고 있는 아이러니한 현실입니다.
연결이 만든 단절 – ‘초연결 사회’에서 외로워지는 사람들
인터넷, SNS, 메신저… 우리는 어느 때보다도 서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몇 초 만에 지구 반대편 사람과 연락할 수 있고, 하루에도 수십 명의 지인과 소통할 수 있는 세상입니다. 하지만 이 초연결 사회는 오히려 외로움을 증가시키고 있다는 사실, 알고 계신가요?
미국, 일본, 한국 등 다양한 국가에서 발표된 연구 결과에 따르면, SNS 사용 시간이 많을수록 주관적 외로움이 증가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는 ‘비교 피로’, ‘가짜 소통’, ‘진짜 관계의 부재’ 때문입니다.
또한 기술은 감정 표현의 빈곤화를 초래합니다. 이모지와 간단한 텍스트로 감정을 표현하는 시대, 우리는 더 이상 복잡하고 진지한 대화를 나누지 않게 되었습니다. 대화는 짧아지고, 관계는 피상적이며, 깊은 연결은 사라집니다.
팬데믹 이후 원격근무와 화상회의가 보편화되며, 비대면 문화는 일상에 정착했습니다. 그러나 인간은 본능적으로 신체적 존재감과 비언어적 신호에 기반해 소통하는 존재입니다. 기술은 편리함을 주었지만, 그로 인해 우리는 점점 더 ‘혼자 있는 감정’에 익숙해지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기술은 분명 우리의 삶을 혁신적으로 바꿔왔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무조건 ‘더 나은 삶’을 보장하는 것은 아닙니다. 효율성과 편리함의 이면에는 인간의 정체성, 능력, 감정이 퇴화하고 있는 측면도 존재합니다. 중요한 건 기술의 발전이 아니라, 그 기술을 어떻게 쓰고,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는지를 고민하는 인간의 철학입니다. 진보는 속도보다 방향의 문제입니다.
지금 우리가 가고 있는 방향이 정말 ‘앞’인지, 아니면 ‘다른 길’인지 돌아볼 때입니다.